로저 페더러, 5년만에 그랜드슬램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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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페더러가 호주오픈 남자단식 우승을 차지했다. |
로저 페더러(스위스, 35세, 17번시드)가 호주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숙명의 라이벌이자 동반자인 라파엘 나달(스페인, 30세, 9번시드)을 세트 스코어 3대2(64 36 61 36 63)으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페더러는 호주오픈에서 5번째, 그랜드슬램 총18회(호주5, 프랑스1, 윔블던7, US5)의 우승 타이틀을 획득했다.
‘빅4’에 의한, ‘빅4’를 위한, ‘빅4’의 테니스
디펜딩 챔피언이자 세계2위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29세)가 2라운드에서 데니스 이스토민에게 탈락하고 세계 1위 앤디 머레이가(영국, 29세) 16강에서 탈락하며 8강에 오르지 못하자 전 세계의 테니스인들은 소위 멘붕에 빠졌다. 2004년 페더러의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나달을 거쳐 조코비치, 그리고 머레이까지 4명에 의한, 4명을 위한, 4명으로부터 모든 이슈가 생산되는 이른바 ‘빅4’ 없는 결승전을 보게 되는가’였다. ‘빅4’ 없는 결승전을 상상하는 것은 신선했다. 그러나 대회 성공의 필수 요건인 ‘흥행성’에서 ‘빅4’에 견주기에는 “글쎄”였다. ‘신선함’과 ‘흥행성’ 이 상반관계가 될지, 병존(竝存, 함께 존재함)할 수 있을지는 시간만이 알 수 있었다. |
로드 레이버, 그리고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그들은 현존하는 테니스 신(神)이다. |
12년의 라이벌 전쟁 ‘승리의 신’과 ‘흥행의 신’
‘빅4’의 전쟁은 이른바 라이벌전이였다. 페더러와 나달, 조코비치와 머레이의 대결이었다. 2004년부터 2016년까지, 12년에 걸쳐 상반기(2010년)까지는 페더러와 나달과의, 2011년부터는 조코비치와 머레이의 대결이었다. 연도별로 물고 물리는 혼전이 있었으나 전반적인 흐름은 그렇게 2대2의 라이벌 전쟁이었다. 그렇게 상반기 6년을 압도적으로 지배했던 페더러, 나달의 라이벌은 조코비치와 머레이의 라이벌 시대로 넘어오면서 ‘승리(勝利)의 신(神)’ 보다는 ‘흥행(興行)의 신(神)’으로 대접받았다.
2017년 호주오픈에서 ‘승리의 신’들인 조코비치와 머레이가 ‘니케‘(그리스 신화의 정복과 승리의 신)로부터 일찌감치 외면을 받고 탈락하며 로드 레이버 아레나를 떠났다. 그러나 ‘흥행의 신’들은 여전히 로드 레이버와 함께하고 있었다. 8강이 지나고 4강이 결정되면서 사람들은 ‘흥행의 신’들이 다시 ‘승리의 신’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품기 시작했다. 신체적인 한계로, 기술적인 한계로 '이제는 승리의 신이 되기엔 역부족일 것' 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흥행의 신 페더러, 나달에게 기대를 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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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테니스가 현대 테니스 강연회를 경기도 광주 더 테니스 실내연습장에서 개최합니다. |
페더러와 바브링카, 나달과 드미트로프의 결승전을 향한 싸움에 테니스인들은 열광했다. 페더러의 기술, 나달의 체력에 그들의 팬들은 “살아있네~”를 연발했다. 5세트까지 가는 접전에 승리의 여신 ‘니케’는 두 나이키(나이키는 니케에서 따왔다) 전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흥행의 신’이 ‘승리의 신’으로 다시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설 명절 ‘종합 과자 선물 세트’ 같은 두 신(神)의 귀환
페더러, 나달의 결승전 소식은 테니스인들 에겐 어릴 적 설 명절의 종합과자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둘의 결승전 소식은 고향 가는 길의 혼잡함도, 명절 스트레스도 사라지게 하는 묘약이었다. 페더러, 나달의 존재는 우리 테니스인들의 마음속에 그렇게 자리잡고 있었다.
2017 AO의 ‘흥행의 신’이자 ‘승리의 신’이 된 그들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둘의 매치는 테니스 전쟁이 아닌 두 거장의 오케스트라 경연과도 같았다. 섬세하고 정교한 연주가 특징인 페더러와 투박하지만 저돌적인 연주가인 나달. 둘의 경연은 서로 물고 물리면서 세트 스코어 2대2가 됐다. 이제 그들에겐 물러설 공간이 없었다. 마지막 연주곡은 베토벤의 교향곡 5번 C단조 ‘운명’이었다.
그들의 운명은 그렇게 정해지지 않았다.
“이 처럼 운명이 문을 두드린다”로 시작되는 베토벤의 ‘운명’은 페더러의 손을 들어줬지만 페더러만의 것이 아니었다. 로드 레이버의 결승에 선 두 사람, 페더러와 나달 모두의 것이었다. 5세트 1대3으로 뒤지다 6대3으로 역전하며 호주오픈의 5번째 타이틀을 획득하는 운명의 순간 터트린 ‘페더러의 눈물’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었다.
페더러가 조코비치, 머레이에게 패하기 시작하면서 결승에 오르지 못하고, 나달이 자신의 텃 밭인 프랑스오픈에서조차 연속으로 4강에도 오르지 못하면서 그들은 ‘은퇴’를 비롯 무수한 고민을 했을 게다. 그러나 그들은 기술적인, 신체적인 문제에 대해 다른 선수들이 선택했던 운명을 따르지 않았다. 변화를 시도했다. 나달은 4년 전부터 연습하던 가로스윙을 완성하며 들고 나왔고, 페더러는 지난해 반년을 쉬면서 좀 더 앞에서, 좀 더 빠른 타점의 스윙으로 가다듬었다.
Simple is Best
심플해진 그들의 샷은 현대 테니스의 기본에 더 충실해졌다. 좀 더 앞에서, 좀 더 높은 타점에서, 좀 더 빠르게 치는 샷은 좀 더 공격적인 테니스를 선보였다. 페더러와 나달은 자신들에게 다가온 신체적인, 기술적인 운명에 맞서 새로운 운명을 개척한 것이다. ‘페더러의 눈물’은 그 처절한 새로운 도전의 눈물인 셈이다. 페더러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나달이 부활한것에 대해 놀랍고 경의를 표한다. 6개월전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만났을 때 이렇게 결승에서 보리라 생각 못했다. 만약 나달과 우승을 나눈다 해도 결코 불만이 없다. 나달과 같이 이런 경기를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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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테니스의 진화를 꿈꾸고 실현하고 있는 두 영웅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
‘흥행의 신’에서 ‘승리의 신’으로 변모한 로저 페더러, 라파엘 나달, 이들의 승리 행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그들 위에 있는 신(神)만이 알 게다. 그러나 승패와 상관없이 그 나이에도 테니스에 대한 그 두 선수의 끊임없는 도전과 혁신은 우리에게 이기고 짐과는 다른 또 다른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두 ‘영웅’에게 테니스인의 한 사람으로 박수를 보낸다.
기술자문: 김춘호(국군체육부대 감독) 박용국(NH 농협은행 감독) 신태진(신태진 아카데미 원장) 양주식(중앙여고 감독) 이의권(토성초 감독) 이재화(KTCF 부회장) 최천진(JTBC 해설위원)-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