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불가능한 것을 해 냈습니다"


세계 테니스계의 정상에 오르는 여정은 누구나 힘겹다. 하지만 노박 조코비치의 여정은 그가 극복해야 했던 남다른 어려움 때문에 더욱 드라마틱했다. 조코비치의 첫 번째 코치는 그에게 테니스뿐 아니라 클래식 음악과 시(詩)까지 가르쳤다.

어린 시절 발칸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으로 조코비치는 공습 대피소와 테니스코트를 오가며 생활해야 했다. 또 최연소 세계 남자 테니스 톱 10 플레이어로서 그는,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이 구축하고 있던 난공불락의 양강 체제를 넘어서기 위해 자신을 완전히 개조했다. 결국 2015년, 이 세르비아 청년은 테니스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한 해를 보냈다.

레드 불레틴: 노박 조코비치, 이제 당신이 세계 최고의 남자 테니스 선수다. 기분이 어떤가?

노박 조코비치: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그래, 내가 세계 최고야! 난 정말 대단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희열이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일생 동안 꿈꿔온 일을 이룬 성취감이겠죠. 제가 네 살 때부터 꿈꾸던 걸 이뤘으니까요.

다른 아이들이 자동차 레이서나 우주비행사를 꿈꿀 나이에 테니스 세계 정상에 오르는 걸 꿈꿨단 말인가?

맞아요. 하지만 그건 단순한 꿈이 아니었어요. 그때 전 벌써 ‘세계 랭킹 1위’를 구체적인 목표로 마음속에 그리고 있었습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고요.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엔 최악의 시절을 만났다. 당신이 열여덟 살이 되었을 때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은 테니스 역사상 유래가 없는 양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2004년부터 2010년 사이에 열린 스물여덟 번의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페더러가 열다섯 번, 나달이 열 번 우승을 차지했다.

그래서 지금 느끼는 성취감이 더 큰 겁니다. 그 누구도 제가 페더러나 나달을 넘어설 거라고 예상하지 못 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전 불가능한 일을 해 낸 겁니다.

테니스 역사에 기록될 이 권력이동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다. 불과 몇 년 전 스무 살 때 당신은 최연소 톱 10 플레이어로 주목 받았다. 그리고 정상의 자리에 서고 싶었지만 그곳엔 이미 테니스 역사상 가장 뛰어난 두 선수가 버티고 있었다. 메이저 대회에서 번번이 이 두 사람에게 막혀 우승하지 못 하면서 무척 힘들었을 것 같은데?

왜 안 그랬겠어요? 제 어린 시절 목표를 기억하시죠?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우승하고 톱 랭커가 되는 거 말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그게 가능한 이야기로 들리셨겠어요?

그게… 믿기 어려웠을 것 같다.

절대로 불가능해 보였을 겁니다. 사실 저 자신도 그게 가능하리라고 믿지 않았으니까요. 코트에서 페더러나 나달과 맞붙으면 전 제대로 기량을 펼쳐 보지도 못 했어요. 시합 전부터 이길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거든요. 당시 저에게 페더러와 나달은 난공불락의 철옹성이었습니다.

엄청난 산을 어떻게 넘어설 수 있었나?

물론 하루아침에 넘어 설 순 없었습니다. 시간이 필요했죠. 그리고 쉽지 않았습니다. 어떤 시점이 되자 정상에 서기 위해서는, 저 자신이 테니스 선수로서 근본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불과 스무 살에 자신을 톱 10 플레이어로 만들어 준 모든 걸 버리고, 새로 시작할 마음이 들었다는 말인가?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아닌 페더러와 나달을 이기고 싶었으니까요. 그래서 몇 년 동안 점진적으로, 철저하게 제 모든 걸 바꿨습니다. 요즘 세계 테니스계에서 최고가 되려면 선수 혼자 잘 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트레이너와 물리 치료사, 영양사와 피트니스 코치로 팀을 구성했습니다.

이전보다 열심히 훈련했고 무엇보다도 목표에 집중했습니다. 시즌 전략을 새로 짜고 식습관도 완전히 뜯어고쳤어요. 무-글루텐 식이요법 덕분에 몸 상태가 안정되면서 게임에 대한 집중력이 좋아졌죠. 또 감기 등 잔병치레로 인해서 메이저 대회에 참가하지 못 하는 일도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테니스계의 광대 역할도 내려놓았다. 

프로 데뷔 초기에 마리아 샤라포바나 라파엘 나달, 앤디 로딕 등 선배 선수들 흉내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팬들이 당신에게 ‘조커’라는 별명도 붙여 줬었는데?

팬들의 기대가 조금씩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급기야 한 대회에서 해설자인지 아나운서인지 누군가 다가와서는 ‘나달 흉내 좀 내봐요. 샤라포바 흉내도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때 이제 그만 할 때가 됐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테니스를 재미있는 하는 게 좋지 않나?

걱정 마세요. 전 변한 게 없습니다. 심각한 건 딱 질색이에요. 요란한 광고를 찍거나 친구들과 편안하게 어울리는 건 제게 중요한 일상입니다. 하지만 제가 즐겁자고 다른 사람들에게 실례를 범하는 건 이제 사양하겠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포커페이스가 경기에 집중하는 것으로 받아 드려지면서, 톱 플레이어들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당신은 이런 부류와는 확연히 구별된다.

포커페이스도 나쁘진 않아요. 하지만 제게 있어 테니스는 포커게임이 아닙니다. 전 누구나 제 감정을 느끼고 그 순간에 제가 경험하는 걸 함께 공유하기 원합니다. 그게 제 성격에도 맞고 우리 일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관중들에게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 줘서 경기에 몰입하게 해야죠.

남자 테니스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나?                                                  

그럼요,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게임 도중엔 주로 무슨 생각을 하나?

재미없게 들리겠지만 주니어 시절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배운 대로 해요. 다음 포인트만 생각합니다. 오로지 다음 포인트 따내는 생각만 하죠.

메이저 대회 경기에서 오직 다음 포인트만 생각하며 경기에 임한다니 대단하다. 터널 시야 같은 건가?

터널 시야처럼 모든 감각이 무뎌지는 걸 의미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전 분위기와 주변 소음에도 예민해집니다. 그게 동기부여도 되고 승부욕도 강해지게 하거든요. 하지만 일단 랠리가 시작되면 전 주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 공에 집중합니다.

경기에서 여전히 압박감을 느끼나?

왜 갑자기 목소리가 어두워지는 거죠?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제게 압박감은 축복입니다. 내가 지금 정말 중요한 경기를 치르는 중이고 내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확실한 증거니까요. 제 경우엔 압박감이 경기에 지장을 주기보다는 승부욕을 더 강하게 합니다. 극한의 긴장감이 좋은 플레이를 하게 만들죠. 긴장감 없는 경기는 시시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 열정이 좋은 선수와 위대한 선수를 가르는 기준인 듯하다.

큰 경기에선 누가 테니스를 더 잘 치느냐가 승부를 결정하지 않아요. 톱 플레이어들의 기량은 백지장 한 장 차이입니다. 신체 조건도 다 거기서 거기죠. 승부를 결정하는 건 “기세’입니다. 그게 차이를 만들죠. 경기를 하다 보면 기세는 한쪽으로 기울게 마련이고 그게 내 쪽으로 넘어오도록 만들어야 이길 수 있습니다.

어떻게 기세를 내 쪽으로 넘어오게 만드나?

경기 내내 인내심을 갖고 집중력을 유지하면서 자신을 믿어야 합니다. 그게 네 시간이 될 수도 있고, 다섯 시간 또는 여섯 시간이 될 수도 있어요.

상대방의 멋진 샷이나 내 실수, 그리고 심판의 오심 따위로 흔들리거나 평정심을 잃어선 안 됩니다. 이걸 잘 하는 선수가 기세를 자기 편에 오래 잡아 둘 수 있고, 중요한 순간에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발칸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고 세계 테니스의 정상에 섰다. 당신 스토리는 할리우드 영화 대본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자신도 정말 드라마틱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기적이죠. 모든 게 한 편의 동화 같아요. 

국토의 절반이 전쟁으로 신음하던 세르비아 출신이라는 사실이 선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궁금하다. 승부욕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 것 같은데?

전 세계 테니스계를 정복해 세르비아의 복수극을 펼치는 전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세르비아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 것 같은데?

물론입니다. 전쟁이 아닌 세르비아의 다른 면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제 이전에 이미 옐레나 얀코비치나 아나 이바노비치 같은 훌륭한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두 선수 모두 2008년에 세계 여자 테니스 정상권에 진입했죠.

세르비아를 다루는 뉴스 기사 제목이 전쟁이 아닌 다른 이야기로 채워지는 건 정말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에 당신이 겪은 남다른 고통들이 서구 세계 출신의 다른 선수들에 비해 성공에 대한 열망을 더 크게 만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아마 그럴 거예요. 제겐 성공이 너무나 절실했으니까요. 그러니 승리에 대한 열망도 더 컸겠죠.

전쟁이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말해 줄 수 있나? 공습을 어떻게 견뎌냈나?

사실 어렸을 땐 공습이 뭔지도 잘 몰랐어요. 하지만 공습 사이렌이 울리면 황급히 할아버지 댁 지하실로 뛰어 들어가야 했습니다. 몇 주일 동안 그런 일이 반복되곤 했죠.

당신은 전쟁이 한창일 때도 훈련을 중단하지 않은 걸로 유명하다. 대피소에서 밤을 지새운 후에 낮엔 테니스 코트로 나가 연습을 했다고 들었는데 상상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사실입니다. 전쟁 중에도 테니스를 계속했습니다. 전시라 학교가 휴교를 해서 연습할 시간은 오히려 더 많았습니다.

보리스 타딕 대통령이 당신을 세르비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외교관이라고 평했다. 실제로 외교관 여권을 사용한다고 들었다.

예, 그리고 외교관 여권 덕분에 덕 볼 때도 있어요.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긴 줄을 설 필요가 없으니까요. (웃음)

그렇게 소중한 모국에서 살지 않는 이유가 있나?

그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르비아에선 제가 나타나기만 하면 난리가 나거든요. 국민들이 절 알아 보고 사랑해 주는 건 정말 고맙고 신나지만 한편으론 과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테니스 선수로서 당신의 재능을 처음 알아본 사람은 옐레나 젠치치이었다. BBC 다큐멘터리에서 당신이 윔블던 우승 트로피를 옛 코치였던 옐레나에게 안겨주는 장면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월드 테니스 스타라기보다는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는 학생 같은 모습이었는데.

말씀하신 장면은 제게도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꿈꿔온 윔블던 우승 트로피를 결국 품에 안았으니까요. 옐레나가 아니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다섯 살이던 절 처음으로 믿어준 사람입니다.

옐레나는 제 부모님을 만나서 제가 가진 잠재력을 강조하면서 테니스를 계속할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줘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수로서 제게 소중한 교훈은 모두 그녀에게서 배운 겁니다.



그 교훈들 중 소개해 줄 수 있는 것이 있나?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옐레나는 훈련 과정에서 양보다 질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무슨 훈련을 하느냐를 얼마나 많이 훈련하느냐 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죠.

옐레나는 당신에게 클래식 음악과 시는 물론 외국어도 가르쳤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그건 옐레나의 전인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었습니다. 음악으로 훈련의 스트레스를 풀 수 있었습니다. 그 방법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요즘도 전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거든요.

나중에 옐레나를 떠나 뮌헨으로 건너가 세계적인 코치 니콜라 필리치의 지도를 받았다. 필리치는 당신을 “내가 본 10대 초반 선수 중 최고의 집중력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했는데…

1분 1초도 허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절 독일에 유학 보내느라 부모님께서 경제적으로 얼마나 애를 쓰고 계신지 잘 알고 있었거든요. 부모님이 허락해 준 기회를 최대한 잘 활용하는 것이 제 의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식으로 항상 모든 일에 열정을 갖고 살았다고 자부하나?

물론입니다. 항상 모든 일에 최선을 다 했습니다. 그게 테니스든 스키를 타는 일이든 모든 일에서 승리하는 게 제 삶의 일부니까요.

당신이 완벽주의자라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인생의 큰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런 면도 필요합니다. 페더러나 나달 같은 선수들과의 승부에서 이기려면 ‘적당히’하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전 제 기량 발전 속도에 속도를 붙이고 싶었습니다.

테니스가 정말 재미있어요. 사실 제 인생 자체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작년 성적은 정말 대단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런데도 또 코트에 나가서 운동을 해야 하나?”  같은 생각이 들 때는 없나?

없습니다. 절대로요. 테니스 코트에서 보내는 매 순간이 즐겁습니다. 테니스가 정말 재미있거든요. 사실 제 인생 자체가 너무 재미있습니다.

레드 카펫도 마찬가지인가? 테니스 스타로서의 화려하고 요란한 삶도 즐기는 편인가?

그런 게 재미없을 이유가 있을까요? 그런 화려한 삶도 결국 제 성취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 최강자로서 전 테니스를 대표하는 자리에 서야 합니다. 아주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탁이 하나 있다. 당신에 대해 들어 본 적 없는 독자들을 위해서 노박 조코비치를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지 말해 달라.

제 자신을 소개하는 게 좀 어색하지만… 좋습니다. 먼저 단점을 소개하자면… 질투심이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감정적일 때도 있어요. 장점은… 저는 소통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외향적인 성격 덕분에 모든 사람들과 마음을 터 놓고 지내죠. 그리고 책임감이 강할 뿐 아니라 친절하답니다

- 글: 죠그 알마로스, 사진 - 게티 이미지

-위 인터뷰는 레드 불레틴에서 게재한 것을 카피해온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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