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마스터스가 열리는 치중 경기장에 도착하면 투어단은 먼저 그 규모에 놀란다. 테니스를 보러 왔지만, 정작 첫 순간에는 코트보다 경기장에 눈을 빼앗긴다.
1만 5천석의 센터코트를 중심으로 5천석의 2번 코트와 약 3천석의 3번 코트가 자리하고, 주변으로 여러 경기·연습 코트가 펼쳐져 있다. 센터코트만 놓고 보면 US오픈의 아서 애시 스타디움보다는 작지만, 나머지 그랜드슬램의 대표 경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규모다.
그중에서도 시선을 붙잡는 것은 센터코트의 지붕이다. 상하이의 시화인 목련을 형상화한 여덟 개의 거대한 꽃잎이 코트를 감싸고 있다. 사진으로 보던 경기장을 직접 마주하면 그 웅장함이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감탄 끝에는 어김없이 비슷한 말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코트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부러움 반, 시샘 반. 그 말에는 한국 테니스에 대한 안타까움과 기대가 함께 담겨 있다. 우리 선수들도 이런 무대에서 뛰고, 우리 동호인들도 멀리 비행기를 타지 않고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만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테니스를 좋아해서 찾아온 사람들이기에, 좋은 경기장 앞에서 떠올리는 것도 결국 우리 테니스다.
치중 경기장은 이미 갖춘 시설에 머물지 않고 변화를 이어가고 있다. 2번 코트에는 지난해 개폐식 지붕이 설치됐다. 비가 내려도 경기를 이어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무대가 생긴 것이다. 관중에게는 기다림을 줄여주고, 선수에게는 경기에 집중할 여건을 마련해주는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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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중경기장 코트 배치도 |
우리 투어단의 첫날 관전은 나이트 세션이다.
예전에는 티켓 한 장으로 하루 종일 여러 코트를 오가며 테니스를 즐겼다. 마음에 드는 경기를 찾아 이동하다 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지금은 코트와 세션에 따라 티켓을 따로 예매해야 한다. 보고 싶은 경기가 많을수록 비용도 늘어난다. 대회가 커지고 흥행의 가치가 높아진 만큼, 주최측의 주머니는 두둑해졌고 팬들의 주머니는 부담이 더해졌다. 그래도 관중석에 앉아 코트를 바라보면, 이곳까지 온 이유가 다시 또렷해진다.
이제 눈앞에서 경기가 시작된다. 첫 경기는 중국의 부 윤차오커터와 프랑스의 루카 반 아쉬의 대결이었다. 와일드카드로 출전한 자국 선수가 센터코트에 서자 중국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이 경기장을 채웠다. 부 윤차오커터가 포인트를 따낼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고, 그 소리는 경기를 보는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부는 반 아쉬를 7-6(3), 6-3으로 꺾었다. 승리는 선수가 코트에서 만들어낸 것이지만, 그날의 응원은 분명 반 아쉬에게는 부담감을, 부에게는 큰 힘이 됐을 것이다. 한 선수를 향해 수많은 사람이 함께 응원하고 기뻐하는 모습도 현장에서 만나는 테니스의 한 장면이었다.
두 번째 경기는 영국의 카메론 노리와 체코의 달리보르 스브르치나가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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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브르치나 |
노리는 마스터스 1000 우승을 포함해 ATP 투어 단식 타이틀 다섯 개를 보유한 선수다. 반면 스브르치나는 예선을 거쳐 본선에 올라왔다. 이름과 경력만 놓고 보면 노리의 승리가 확률적으로 훨씬 높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볼수록 시선은 스브르치나 쪽으로 옮겨갔다. 그는 정교하고 다양한 샷으로 노리와 맞섰다. 단순히 공을 버티며 넘기는 선수가 아니었다. 상대와 주고받는 랠리 속에서 자신의 테니스를 펼쳤고, 경기가 이어질수록 다음 샷을 기다리게 만들며 노리를 압박했다.
결국 스브르치나가 6-3, 3-6, 6-4로 승리하며 2라운드에 진출했다. 예선을 통과해 어렵게 얻은 본선 무대에서, 그는 자신을 기억해야 할 이유를 관중석에 앉아있는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줬다.
그날 처음 스브르치나의 경기를 자세히 본 사람이라면 앞으로 대진표에서 그의 이름을 한 번 더 찾아보게 될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가능성을 직접 지켜봤다는 사실만으로도 나 역시 그의 성장을 조용히 지켜보게 될게다.
이것이 바로 직관의 매력이 아닐까.
방송이 주목하는 스타를 만나는 즐거움도 크지만, 아직 우리에게 낯선 선수를 발견하는 기쁨도 그에 못지않다. 이름을 제대로 읽는 것부터 시작해 그의 샷을 살펴보고, 어느 순간 그의 다음 경기가 궁금해진다. 그렇게 테니스를 보는 즐거움이 조금 더 하나씩 넓어진다.
훗날 스브르치나가 더 큰 무대에 오른다면, 함께 관전했던 우리는 이날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선수, 우리가 상하이에서 봤잖아요.”
여행에서 오래 남는 것은 때로 그런 작은 연결이다. 함께 본 경기, 예상과 달랐던 승부, 처음 기억하게 된 선수의 이름. 같은 코트를 바라보며 나눈 감탄이 돌아온 뒤에도 우리를 그날의 관중석으로 데려간다.
치중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거대한 규모였다. 그러나 첫날 밤 마음에 남은 것은 그 안에서 뛰던 선수들과 함께 경기를 바라본 사람들이었다.
테니스를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상하이까지 온 우리에게, 첫날의 코트는 충분한 답을 주었다. 직접 와서 보기를 잘했다고. 그리고 아직 만나지 못한 좋은 경기가 많이 남아 있다고. 이제부터 진짜 경기가 시작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