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하이 마스터스 투어기 5>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인사, “또 봬요”
    • 3일 차 아침이 밝았다.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앞에서

      지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숙소는 깔끔했고, 침대도 편안했다. 척추관협착증으로 수술을 받은 뒤로는 여행지에서 잠자리가 늘 신경 쓰이는데, 이번에는 몸을 충분히 쉬게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걷고 경기를 본 피로를 내려놓고, 다시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었다.


      오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로 향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상하이에 와서 그냥 지나치기 어려운 곳이다.

      현재 남아 있는 청사는 1926년부터 1932년까지 사용한 상하이의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다.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이곳에서 정부 업무를 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힘을 모았다.

      낯선 나라의 좁은 골목, 크지 않은 건물 안에서 그들은 얼마나 먼 내일을 바라봤을까. 돌아갈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곳을 지켰던 사람들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조심스러워졌다. 여행의 즐거움 속에서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게 하는 시간이었다.

      청사 인근 신천지로 나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옛 상하이의 골목에 세련된 상점과 카페가 어우러져 있었다. 천천히 걷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낮 12시부터 시작하는 경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 향에 마음만 잠시 맡기고, 거리를 걷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여행에서는 늘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싶다.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전날처럼 두 팀으로 나뉘었다. 관광팀은 정안사로, 경기 관전팀은 치중 경기장으로 향했다. 각자 좋아하는 방식으로 상하이의 하루를 채우러 가는 길이었다.
      이번 투어에서는 경기 관전을 기존 두 차례에서 세 차례로 늘렸다. 테니스를 좋아해 상하이까지 온 사람들에게 코트에서 보내는 하루는 그만큼 소중하다. 더 많은 선수를 보고, 더 많은 경기를 기억에 담을 수 있게 됐다.

      이날도 보고 싶은 선수들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제 알리아심과 다닐 메드베데프, 라파엘 호다르, 캐스퍼 루드, 테일러 프리츠, 러너 티엔. 복식 코트에도 눈길을 끄는 선수들이 나섰고, 나이트 세션에는 알카라스와 무세티의 경기가 예정돼 있었다. 경기 일정을 펼쳐 놓으면 어느 코트부터 가야 할지 행복한 고민이 생겼다.

      “코트에 들어가면 한 곳에만 머무르지 말고 이곳저곳 돌아다니세요. 여기까지 왔으니 많은 선수의 경기를 보고 가면 좋잖아요.”

      투어팀에게 전한 말이다.
      일행은 부지런히 코트를 누볐다. 한 경기를 보다가 다른 코트로 옮겨 가고, 배가 고프면 푸드코트에서 간단히 요기를 했다. 기념품 숍도 빠질 수 없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 앞에서 발걸음이 멈추고, 무엇을 사 갈지 고르는 동안에도 이야기가 이어졌다. 선수들이 공을 주고받는 코트 주변에서 우리도 저마다의 추억을 하나씩 챙기고 있었다.
      이날 마지막 일정은 와이탄 야경 유람선이었다. 관광팀과 관전팀은 선착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나오는 길부터 마음이 급해졌다. 한 시간이면 도착한다던 길이 좀처럼 풀리지 않았다. 유람선 예약은 오후 6시 50분. 버스가 멈춰 설 때마다 시계를 보게 됐다.

      선착장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7시였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관광팀을 생각하니 몸보다 마음이 앞서 뛰었다. 함께 움직이는 여행에서는 누군가의 기다림이 내 몫의 걱정이 된다.

      그렇게 서둘러 오른 유람선에서 마침내 상하이의 밤을 만났다.
      황푸강 양쪽으로 불을 밝힌 건물들이 펼쳐졌다. 강물 위로 빛이 길게 번지고, 배가 움직일 때마다 눈앞의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다.

      “멋있다.”
      와이탄강 야경
      와이탄강 야경
      곳곳에서 짧은 탄성이 나왔다. 사람들은 연신 휴대전화를 들고 사진을 찍었다. 화면에 야경을 담다가 고개를 들어 다시 바라봤다. 사진으로 남기고 싶고, 눈으로도 오래 보고 싶은 밤이었다.

      40여 분의 유람선 관람을 마치고 식당에 도착하니 오후 8시 반이 넘었다. 이른 점심 이후 기다림이 길었던 만큼 모두 배가 고팠다.

      상하이에서의 마지막 저녁 메뉴는 삼겹살과 소주였다. 며칠 동안 현지 음식을 즐겼으니, 마지막 밤에는 익숙한 음식 앞에서 편하게 앉고 싶었다.

      삼겹살이 익어 가고 술잔이 돌자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첫날에는 서로 이름을 묻고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던 사람들이 이제는 자연스럽게 웃고 잔을 채워 줬다. 낮에 본 경기 이야기, 코트를 옮겨 다닌 이야기, 관광팀이 다녀온 곳의 이야기가 테이블을 오갔다.

      같은 여행을 했지만 서로 다른 하루를 보냈기에 들려줄 이야기도 많았다.

      어느새 식당 문을 닫는 밤 11시가 가까워졌다. 이날 소주와 맥주 값만 3천 위안(한화 약 60만원)이 나왔다. 마지막 저녁을 조금이라도 더 오래 붙잡고 싶었던 모양이다.
      호텔에 돌아와서도 쉽게 흩어지지 못했다. 로비에 자리를 잡았고 하나둘 다시 모였다. 마트에서 사 온 칭따오 맥주 30캔이 놓이고, 식당에서 미처 끝내지 못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피곤하다면서도 방으로 올라가지 않는 사람들. 캔을 하나 더 따고, 이야기를 하나 더 꺼냈다. 맥주 30캔은 그날 밤만큼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요술캔이었다.

      상하이 3박4일에 대한 투어단의 평가
      상하이 3박4일에 대한 투어단의 평가
      다음 날, 푸동공항.
      몸에는 3박 4일의 피로가 남아 있었지만 얼굴에는 아쉬움이 더 짙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 각자의 일상을 시작해야 했다. 함께 움직이던 사람들이 출국장 앞에서 조금씩 흩어졌다.

      “우리나라에서 또 봬요.”
      상하이에서 전한 마지막 인사였다.

      처음 만났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그 말을 건넸다. 며칠 전만 해도 낯설었던 얼굴들이 이제는 다시 보고 싶은 얼굴이 되어 있었다. 함께 경기를 보고, 식사를 하고, 늦은 밤까지 이야기를 나눈 시간이 우리 사이에 남았다.

      우리는 내년 1월 9일, 청도에서 1박 2일 일정으로 다시 만나기로 했다. 실내코트에서 함께 운동하고, 밥을 먹고, 상하이에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도 이어 갈 생각이다.

      그때는 첫 만남의 어색함 없이 서로를 반길 수 있을 것이다. 코트에서 인사를 나누고 나면 누군가는 벌써 상하이 이야기를 꺼낼지도 모른다.

      3박 4일은 그렇게 끝났다.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음 만남의 날짜를 다시 떠올린다. 설렘으로 기다리며 반갑게 인사할 그 날을.

      글= 상하이 방극종 기자, 사진=상하이 마스터스 투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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