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박 조코비치가 윔블던에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단순히 자신의 경기력이나 대회 운영에 대한 불만이 아니었다. 그는 현재 프로테니스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정면으로 지적하며 “테니스는 진정한 재설정(reset)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우이빙과의 윔블던 1회전 승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코비치는 늘어나는 선수들의 부상, 지나치게 길어진 시즌, 대회의 상업화, 그리고 젊은 세대를 끌어들이기 위한 변화까지 폭넓게 언급하며 현재 ATP 투어 시스템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했다.
“돈은 늘지만 선수들은 더 지친다”
조코비치는 최근 몇 년간 프로테니스가 지나치게 상업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더 긴 토너먼트를 만들고, 시즌을 연장하고, 이미 빡빡한 일정에 새로운 대회를 추가하면서 스포츠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러한 변화의 결과로 선수들의 부담은 계속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최근 ATP와 WTA 투어에서는 마스터스1000 일부 대회가 기존 1주 일정에서 12일 또는 2주 일정으로 확대됐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투자 확대와 새로운 이벤트 추가까지 이어지면서 정상급 선수들은 사실상 연중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내는 생활을 하고 있다.
조코비치는 자신처럼 출전 일정을 선택할 수 있는 선수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인정하면서도 “카를로스 알카라스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이 집을 너무 오래 떠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를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마스터스1000 확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조코비치는 특히 최근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마스터스1000 확대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상업적으로는 수익을 늘릴 수 있지만 진짜 질문은 누구를 위한 수익이냐”며 문제를 제기했다. 조코비치에 따르면 추가된 경기 기간은 선수보다 대회 운영 주체에게 훨씬 더 큰 경제적 이익을 안겨준다.
그는 “선수들은 대회가 열리는 기간 동안만 시설 관련 수익을 얻지만 나머지 기간의 수익은 대부분 대회 소유주에게 돌아간다”고 설명했다. 이는 ATP가 최근 추진해 온 장기 라이선스 계약과 마스터스1000 확대 정책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이기도 하다.
“젊은 세대의 스포츠 소비 방식이 달라졌다”
조코비치는 테니스가 변화하는 스포츠 소비 문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젊은 팬들은 하루에 4~5시간씩 경기를 보지 않습니다. 스포츠 소비 습관도, 집중 시간도 달라졌습니다.”
그는 그랜드슬램은 전통을 유지해야 하지만 일반 투어는 보다 역동적인 경기 방식과 짧은 경기 시간, 새로운 팬층을 겨냥한 다양한 실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최근 ATP가 테스트하고 있는 경기 시간 단축, 경기장 엔터테인먼트 강화, 디지털 콘텐츠 확대 등과도 맥을 같이한다.
“테니스는 단결이 부족하다”
조코비치는 현재 테니스 행정 구조에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ATP, WTA, ITF, 그랜드슬램 조직위원회 등 여러 기관이 각각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움직이면서 스포츠 전체의 발전을 위한 통합된 방향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우리 스포츠를 이끄는 기관들 사이에는 너무 많은 긴장이 존재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이해관계자가 한자리에 모여 테니스의 미래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PTPA 역할도 재차 강조
조코비치는 자신이 공동 창립한 선수협회 PTPA(Professional Tennis Players Association)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ATP의 현재 구조에서는 선수와 대회의 이해관계가 항상 일치할 수 없으며, 따라서 선수들의 목소리를 독립적으로 대변하는 조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앞으로 ATP와 협력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PTPA는 다른 기관들과 함께 테니스의 미래를 논의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변화의 갈림길에 선 프로테니스
조코비치의 이번 발언은 단순한 개인 의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최근 ATP와 WTA는 상금 증가와 대회 확대를 통해 시장 규모를 키우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는 과밀한 일정, 잦은 부상, 선수 피로도 증가, 행정기관 간 갈등 등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특히 마스터스1000 확대와 30년 장기 라이선스 계약, 사우디 자본 유입, PTPA와 ATP의 갈등은 앞으로 프로테니스가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로 꼽힌다.
24개의 그랜드슬램 단식 우승을 차지한 조코비치의 발언은 단순히 한 베테랑 선수의 불만이 아니다. 그는 현재의 성공 모델을 유지하면서도 선수 보호와 팬 경험, 그리고 스포츠의 지속 가능성 사이에서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코비치가 던진 “테니스는 리셋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윔블던 기자회견장을 넘어 프로테니스 전체를 향한 화두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