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상하이마스터스 투어기 7> “상하이를 즐길 시간을 주세요!”
    • “우리 상하이를 즐길 시간을 주세요!”

      대한민국임시정부 청사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투어단에서 드디어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불만이라고 하기에는 유쾌했고, 농담으로 넘기기에는 제법 간절했다.

      아침 먹고 관광지로 이동하고, 서둘러 둘러본 뒤 이른 점심. 그러고는 낮 12시에 시작하는 경기를 보러 치중 경기장으로 달려가는 일정이었다. 상하이까지 왔는데 커피 한 잔 느긋하게 마실 틈이 없다니. 테니스도 좋지만, 커피와 쇼핑에도 출전 기회를 달라는 이야기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테니스를 사랑하는 마음과 여행을 즐기는 방식은, 꼭 같은 박자로 움직이지는 않았다.

      1차 투어팀이 귀국한 뒤 이틀간 숨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2차 투어. 13일 화요일부터 16일 금요일까지, 3박 4일 일정이었다. 16강전을 이틀, 8강전을 하루, 총 사흘 동안 관전하는 코스다.

      앞서 1차 팀도 1라운드 둘째 날과 2라운드 이틀을 관전했다. 예전에는 이틀이었던 경기 관전을 올해는 사흘로 늘렸다. 테니스 보러 바다까지 건너온 사람들에게 하루를 더 얹어드렸으니, 반응은 당연히 ‘베리 굿’이었다.

      다만 그 하루가 늘어난 만큼, 상하이에서 커피를 마시고 거리를 거닐 시간은 줄었다. 관전 하루 추가의 기쁨 뒤에 숨어 있던 예상치 못한 작은 반전이었다.

      두 팀은 구성부터 달랐다. 1차가 영남권 중심이었다면 2차는 서울과 강원도 참가자들이 주축이었다. 남성이 많았던 1차와 달리, 2차는 총 23명 가운데 남성이 6명, 여성이 17명이었다. 본래 여성 인원이 더 많았으나 출발 직전에 가정사, 건강상의 이유로 두 명이 아쉽게도 투어를 포기했다. 

      관광 코스는 대체로 비슷했지만 움직이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1차의 대구고 동기 부부팀은 일부 경기 관전 대신 관광을 선택했다. 함께 둘러보는 일정 외에도 따로 명소를 찾아 상하이를 여유롭게 즐겼다. 반면 2차 팀은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움직였다.

      이번 두 팀을 지켜보며 재미있는 차이도 느꼈다. 1차에서는 경기 관전과 관광, 그리고 술자리에 무게가 실렸다면, 2차에서는 관광과 쇼핑, 여유 시간도 테니스 못지않게 소중했다. 물론 성별만으로 여행 취향을 나눌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여행에서는 그 차이가 어느정도 선명했다.

      그리고 치중 경기장에 도착하자, 모두가 저마다의 방법으로 균형을 찾기 시작했다.

      코트에서는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코트 밖에서는 수건과 옷을 비롯한 기념품을 구경했다. 푸드 코트에서 먹거리를 고르고, 음료와 맥주를 앞에 놓고 잠시 쉬었다. 경기장 안에서도 즐길 거리는 얼마든지 있었다. 테니스만 보러 온 줄 알았는데, 테니스장 안에 또 하나의 여행지가 있었다.

      더 테니스가 상하이 마스터스 투어를 1차, 2차, 3차로 나눈 이유도 서로 다른 취향을 담기 위해서였다.

      초반 라운드를 보는 1차는 말 그대로 ‘테니스 뷔페’다. 96드로로 열리는 상하이 마스터스에서는 시드 선수 32명이 1라운드를 건너뛰고 2라운드부터 등장한다. 여러 코트에서 단식과 복식이 이어지니, 보고 싶은 경기를 따라다니다 보면 몸이 하나인 것이 아쉬워진다.

      이 코트도 가야 하고, 저 코트도 놓칠 수 없다. 경기 시간표를 펼쳐 들고 나름의 작전을 짜야 한다. 많이 보고 싶은 테니스 마니아에게는 행복한 고민이다.

      2차는 결이 다르다. 16강과 8강까지 살아남은 선수들이 맞붙는다. 경기 수는 줄지만 한 경기 한 경기의 무게는 커진다. 관전 사이에 관광과 휴식을 곁들이기에도 좋다.

      그리고 3차는 준결승과 결승. 우승 트로피의 주인이 결정되는 마지막 장면을 지켜보는 여행이다.

      많이 볼 것인가, 관전과 여행을 두루 즐길 것인가, 마지막 승부를 볼 것인가. 같은 대회라도 어느 시점에 오느냐에 따라 여행의 표정이 달라진다.

      그런데 2차 팀에는 예상하지 못한 여유까지 생겼다.

      센터 코트 데이 세션에서 경기를 하던 선수들이 잇달아 부상으로 기권한 것이다. 16강에서 캐스퍼 루드와 맞붙은 오제 알리아심이, 8강에서 다비도비치 포키나와 대결한 아르튀르 게아가 각각 1세트 도중 경기를 접었다.

      선수들의 부상도, 기대했던 경기가 일찍 끝난 것도 안타까웠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범위에 있는 일인걸…오후 6시 나이트 세션까지는 시간이 제법 남았다.

      그렇게 생긴 빈 시간을 투어단은 알차게 채웠다. 쇼핑몰에서는 자신을 위한 기념품과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푸드 코트에서는 간단한 먹거리와 음료, 맥주를 즐겼다.

      오전에는 시간에 쫓겼는데, 정작 경기장에 들어오니 시간에 여유가 생겼다. “상하이를 즐길 시간을 달라”던 요청이 뜻밖의 장소에서 이뤄진 셈이다.

      그래도 이번 여행의 중심에는 역시 테니스가 있었다.

      “어떤 경기가 가장 재미있었어요?” 경기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물었다.
      “첫날 즈베레프와 부블리크 경기요.” 대부분의 대답이다. 

      두 알렉산더의 대결. 알렉산더 즈베레프와 알렉산더 부블리크가 맞붙은 16강전이었다. 참고로 두 선수의 뿌리는 러시아다. 즈베레프는 부모가 러시아에 살다가 독일로, 부블리크는 러시아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국적을 변경했다.

      한쪽이 베이스라인에서 묵직한 공으로 승부를 걸면, 다른 한쪽은 그 질서를 슬쩍 비틀었다. 즈베레프가 스트로크로 밀어붙일 때 부블리크는 예고 없이 네트 앞에 공을 떨어뜨렸다.

      달려라, 즈베레프.
      긴 다리로 코트를 가로질러 겨우 공을 살려놓으면, 이번에는 부블리크가 머리 위로 로브를 띄웠다.

      이번에는 뒤로 뛰어라, 즈베레프.
      베이스라인에서 주고받던 공이 갑자기 네트 앞으로 떨어지고, 다시 머리 위를 넘어갔다. 공 하나에 두 선수의 동선이 바뀌고, 관중들의 시선도 앞뒤로 바빠졌다.

      강한 공을 주고받는 랠리에도 짜릿함이 있지만, 이렇게 코트 전체를 사용하는 승부에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다음 공이 어디로 갈지 모르니 눈을 뗄 수가 없다.

      관중석의 반응도 즉각적이었다. 드롭샷에 탄성이 터지고, 그 공을 살려내면 박수가 쏟아졌다. 다시 로브와 스매시가 이어지면 환호가 한 번 더 커졌다. 선수들은 공을 주고받았고, 관중들은 탄성과 박수를 주고받았다.

      바로 이런 순간이다. 우리가 굳이 비행기를 타고, 표를 사고, 경기장까지 찾아오는 이유.

      화면으로 볼 때도 멋진 장면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공을 쫓는 선수의 발소리와 수많은 사람의 탄성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옆자리 사람과 동시에 몸을 들썩이고, 모르는 관중과 같은 순간에 웃는다. 한 포인트가 끝났을 뿐인데, 함께 무언가를 겪은 기분이 든다.

      오늘, 2차 투어단은 인천과 부산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상하이에 올 때보다 짐은 한 아름씩 늘었다. 누군가는 대회 수건을, 누군가는 옷을, 누군가는 지인들에게 줄 선물을 챙겼을 것이다. 그리고 가방에 넣을 수 없는 장면들도 저마다 가져갔다.

      멋진 랠리 하나, 관중석에서 터뜨린 환호, 함께 먹은 음식, 바쁜 일정 속에서 겨우 누린 잠깐의 여유까지.

      문득 먼저 돌아간 1차 투어팀 백승철 님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거제에서 온 그가 귀국 후 이렇게 말했다.
      “국장님, 제가 여행을 많이 다녀봤는데, 이번 상하이 마스터스 3박 4일의 여파가 세네요.”

      여파라니. 진행자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말이었다.
      “여파가 세다는 의미가?”

      돌아온 답에 살며시 웃음이 났다.
      “코트로 나가고 싶은 마음에… 일이 안 잡히네요.”

      아, 그런 여파라면.
      여행을 준비한 사람으로서 그보다 반가운 후유증이 또 있을까.

      2차 팀에도 그런 여운이 남았으면 좋겠다. 일상으로 돌아간 어느 날, 문득 상하이의 한 장면이 떠오르고, 함께 웃었던 사람이 생각나고, 라켓을 들고 코트로 나가고 싶어지는 것.

      “상하이를 즐길 시간을 주세요!”

      돌이켜보니 그 한마디마저 이번 여행의 좋은 추억이 됐다. 다음에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조금 더 챙겨야겠다. 물론, 재미있는 경기를 놓치지 않는 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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