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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선 2라운드에서 김원민 선수가 서브를 넣고 있다. |
“저는 그랜드슬램에서 뛸 수 있도록 운동할 테니, 어머니는 건강을 챙겨 주세요.”
아들은 자신의 꿈을 걸었고, 어머니에게는 건강을 지켜달라고 했다. 2026 안동국제주니어테니스대회 J60 만찬장. 신미란 지도자(안동시스포츠클럽)는 술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아들과 나눈 약속을 꺼냈다.
“이 약속은 꼭 지킬 거예요.”
짧은 대답이었지만 눈빛은 단단했다. 아들이 그랜드슬램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자신도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다짐이었다.
그 아들은 안동시청 소속 김원민(17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지도자였던 어머니의 권유로 처음 라켓을 잡았다. 안동 용상초를 거쳐 안동중에 진학했지만, 테니스에 집중하기 위해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나왔다. 이후 중·고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고, 고등학교 2학년 또래인 지금은 안동시청 소속으로 코트에 서고 있다.
남들과 다른 길을 일찍 선택한 소년. 그 길의 끝에서 만나고 싶은 무대가 그랜드슬램이다. 그러나 꿈을 향한 발걸음은 대회 첫 경기부터 통증에 붙잡혔다.
10월 27일, 류지훈과 맞붙은 본선 1회전. 김원민은 첫 세트부터 몸에 이상을 호소했다. 경기가 멈췄고, 그는 코트 바닥에 엎드려 피지컬 트레이너의 처치를 받았다. 다리에는 테이핑이 감겨 있었다.
코트 밖에서는 조부모와 어머니가 그 모습을 지켜봤다. 손자이자 아들이 바닥에 누워 있는 동안, 가족들은 안타깝고 불안한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저 상태로 경기를 계속할 수 있어요?” 안동시청 권용식 감독에게 물었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가 봐요.”
김원민은 몸을 일으켰다. 다시 라켓을 쥐고 베이스라인으로 돌아갔다. 경기 도중 세 차례에 걸쳐 치료를 받은 그는 끝내 세트 스코어 2-0으로 승리했다.
경기 뒤, 기쁨에 앞서 몸 상태부터 물었다.
“어디가 아팠어요?”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허리가 좋지 않아요.”
“그런데 왜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어요?”
“포기하고 싶지 않았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망설임 없는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믿음만큼 몸 상태에 대한 걱정도 남았다.
김원민은 허리 아래쪽의 통증을 설명하며 약간의 척추측만증이 있다고 말했다.
더 큰 무대에 서려면 치료와 회복도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묻자, 그는 눈앞의 목표를 이야기했다.
“현재는 포인트를 확보를 우선으로 해야 해서 내년 호주오픈 주니어에 뛰고 나서 재활치료에 나서려고요.”
그에게 호주오픈은 어떻게든 닿고 싶은 무대였다. 다만 그 꿈을 오래 이어가기 위해서는 몸을 돌보는 일 역시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날 코트 밖에서 그를 바라보던 가족의 눈빛에는 승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걱정이 담겨 있었다.
김원민은 안동이 기대를 걸고 있는 선수다. 안동 테니스는 국가대표 정보영의 뒤를 이을 주자로 그를 주목하고 있다. 그다음에는 안동중 1학년 권민찬을 비롯해 학교에서 테니스를 배우고 있는 중고등학교 선수들이 성장해 그 흐름을 이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해 이 대회 우승자인 김원민은 올해 주니어 세계랭킹 165위, 1번 시드로 출전해 대회 2연패에 도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안동 너머를 향해 있다.
“일단 주니어 때는 호주오픈에 출전해서 성적을 내고 싶어요. 이후에는 시니어 무대에 진출해 세계랭킹 100위 안에 드는 게 지금 목표예요.”
10년 뒤에는 어떤 선수가 돼 있을 것 같으냐고 묻자, 이번에는 조금 더 선명한 미래를 들려줬다.
“그 나이면 지금 권순우 형 나이쯤인데, 순우 형처럼 국가대표로 세계 투어대회를 뛰고 있을 것 같아요.”
그 미래를 위해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해외 대회에 나서고 있다. 이번 J60과 이어지는 안동 J100을 마친 뒤에는 인도 지역 대회에 출전할 계획이다.
해외에서 부딪치며 느낀 차이도 분명했다.
“외국 주니어 선수들은 굉장히 공격적이에요. 상대적으로 우리는 수비적으로 공을 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시니어 무대에서는 그 공격력을 감당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주니어의 성적을 성인 무대의 경쟁력으로 이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찾아가고 있었다.
스스로의 장단점을 바라보는 눈도 냉정했다.
“서브와 네트 플레이가 장점이에요. 키가 크지 않아서 파워를 더 보강하려고 연습하고 있어요. 스트로크도 더 좋아져야 한다는 걸 알고 있어요. 장점은 살리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면서 성장하고 싶어요.”
서울에서는 ATA 최주연 아카데미에서, 안동에서는 안동시청에서 훈련한다. 여러 지도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기만의 테니스를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 길에서 가장 고마운 사람을 묻자, 김원민은 어머니와 함께 손영자 안동시테니스협회장을 꼽았다.
“협회장님은 제가 운동할 수 있도록 정말 많은 도움을 주세요. 앞으로 갈 길도 제시해주시고, 해외 투어에 나갈 때 후원도 많이 해주세요. 정말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소년의 꿈 뒤에는 가족과 지도자, 그리고 그 가능성을 믿고 힘을 보태는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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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인 신미란 지도자가 볼 피딩을 하고 있다 |
본선 두 번째 경기에서 김원민은 6-0, 6-0으로 승리했다. 경기를 마친 뒤에도 그는 코트 한편에 서 있었다. 네트 너머에서 넘어오는 공을 받아 스트로크를 가다듬었다. 공을 공급하는 지도자는 어머니 신미란이었다. 어머니가 공을 보내면 아들이 받아쳤다. 안동시청의 황덕모 전 감독과 권용식 현 감독도 그 옆에서 훈련에 함께하며 그의 공을 지켜보며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랜드슬램이라는 꿈도, 결국은 이렇게 주고받는 공 하나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아들은 더 큰 무대에 서겠다고 약속했다. 어머니는 건강을 지키겠다고 약속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했고, 어머니는 아들이 건강하게 꿈에 닿기를 바랐다.
그 약속이 언제 그랜드슬램 코트에 닿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두 사람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한 약속을 지켜가고 있는 이 시간들이 쌓이면 그 약속이 현실이 되는 날이 그리 멀지는 않으리라.